얼마 전 시화공단의 SPC삼립빵공장에서 끼임 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어 포스코이앤씨 건설현장에서도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정부는 초강력 엄단조치로 사실상 비상사태나 마찬가지인 경고를 아끼지 않았다. 빵공장에서는 야간작업조가 중단되었고 그 시간에 일하던 사람들은 또 다른 돈벌이를 찾아야 했다.
포스코 이앤씨에서도 전국의 103개 건설현장에 무기한 중단이라는 극단적 조치를 발표했다. 물론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보다 엄격한 조치, 예산투입, 안전교육 등 인명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어느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2024년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 수는 827명, 이 가운데 건설업이 328명으로 가장 많았고 제조업187명, 서비스업145명 순으로 이어졌다.
남성이 785명, 여성이 42명으로 남성이 위험한 작업환경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중 388명의 남성이 60대 이상인 것을 집계됐다 이쯤 되면 60대 이상의 남성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목숨 걸고 일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으로 계산된다.
이 세상에서 죽을 위험이 있는 줄 알면서도 일해야 먹고 하는 사람들, 그들이 정년퇴직을 하거나 이제 한평생 고생했으니 자신의 취미나 특기를 찾아 자신을 사랑할 나이다 되었음에도 험한 건설현장에서 폭염 속에 구슬땀을 훔치고 일해야 한다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일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척박한 삶이 종점에 도달했을 때의 모습치고는 안쓰럽기 그지없다. 결혼해서 가장역할을 해야 하고 자상하고 성실한 남편, 늘 든든한 아버지, 위로는 연로하신 부모님까지 챙기는 슈퍼맨이 되기에는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다.
한평생 다니던 직장에 근무 할 때는 나름 현직이라는 자부심과 직급에 맞는 긍지, 자신감, 직장내 신뢰까지 받을 수 있었지만 막상 그만두면 아파트 경비자리도 하늘의 별따기다. 돌아보면 온통 키오스크, 셀프주유, 하이패스, 서빙용 로봇에 인공지능까지 잔일을 대신하니 갈 곳 이라고는 공원이나 눈칫밥 먹는 백수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어떤 종교의 강사는 이런 아버지가 밥 달라고 하면 간덩이가 부은 것이라고 개그를 펼쳐 동년배 여성들에게 뜨거운 공감대로 박수를 받기도 하고 부인의 외출행선지를 묻는 자체가 제정신이 아니라며 남 녀간 갈라치기와 아버지들의 기죽이기에 침을 튀기며 열강을 아끼지 않는다.
현재 대한민국 남성들은 그나마 연금이라도 살아남아서 밥이라도 먹겠지만 자라는 청년들은 그런 대책조차도 안개속이다. 노출이 심한 여성이 안 봐주면 안본다고 보면 본다고 몇 초 이상을 보면 수치심 느껴서 성추행이라고 범죄가 형성되는 사회로 가고 있다.
스마트 폰만 켜면 온갖 성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멀쩡한 남성도 언제 어떤 식으로 가해자로 몰릴지 모르는 세상이다. 각설하고, 60대 이상 남성들이 차츰 급변하는 사회 흐름 속에 비경제 인구로 전락해서 퇴물이 되어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갈 곳이 점차 좁아지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앞서 거론한 것처럼 103곳 건설현장이 무기한 중단된다면 준공을 코앞에 둔 입주자는 물론이고 관련 업체들의 피해는 일파만파다. 수 백 개의 하도급회사에 수 십 가지도 넘을 분야의 종사자들이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 앉게 되는 것인데 이야말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정책이다.
한마디로 벼룩 잡는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필자가 건설현장에서잔뼈가 굵어본 경험자로써 논하자면 일명 노가다 현장은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고 서로 손발이 맞아야 하며 치밀하게 시계바늘처럼 돌아가야 전체 공정이 진행되는 것이다.
어느 한 공정만 막혀도 후속공정에 지장을 주는 것이 현장의 생리다. 외형상 안전을 주장하며 강력한 벌금명령이나 면허 처분 등으로 인명피해를 막는다지만 현실적으로 얼마나 실효성이 있는지도 짚어봐야 한다. 지금 가장 불안한 건 위에서 언급한 60대 들이 그나마 종사하던 위험한 작업환경 마져 사라져 갈곳이 없다는 것이다.
오래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재임중 경기도청 출입기자로 취재활동을 다닐때였다. 불법사채 업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과 원금도 안갚게 해 주겠다는 보도 자료를 보고 기겁을 한 일이 있었다. 고금리 사채를 쓰고 싶어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고 그 돈이 구정물보다 더 위험한 돈 인줄 알면서고 쓰는 것은 당장에 목이 타기 때문이다.
누가 1 금융권에 저금리를 사용하고 싶지 않던가. 담보가 없고 신용이 안 되니 쓰는 것이며 그런 돈을 주는 사채업자도 또한 은행보다 안전하지 못한 조건 속에서 돈을 빌려 주기 때문에 고금리라도 받아야 수지타산이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룰을 제켜놓고 무조건 행정 몽둥이를 들면 사채업자들이 일단 소자기 피하는 방법으로 수면 아래로 들어가게 된다.
그렇다면 그런 물이라도 마시지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강, 절도범으로 변할 수 밖에 없는 다음 생각은 안하는가 싶었다. 코로나19때도 마찬가지다 가평의 신천지 본원을 급습하여 이만희 총회장을 덮치던 날 방송국 카메라 기자들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그 밤에 때로 몰려 집중보도했다.
사전에 준비되지 않았으면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 마치 정의의 사도 마냥 멋지게 비춰졌다. 물론 신천지를 이단으로 몰던 한국기독교 총 연합회 입장에서는 쾌재를 부를 일이다. 어느 쪽에 유권자가 많을지 표를 얻을지는 불 보듯 뻔 한 상황이었다. 훗날 유, 무죄가 가려지고도 아무런 입장발표는 없었다.
모든 일에는 일장일단 이 있다. 한해 900명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할 때 마다 대형 건설현장을 옥죄고 제조 공장이 근무시간까지 국가가 나서서 감놔라 한다면 모든 사기업의 경영을 공기업으로 전환시켜 국가가 통째로 맡아 운영하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의 모든 분야는 각기 고유의 색깔과 운영시스템이 있기 마련이다.
이를 무시하고 폼 나는 일에 편중된다면 어느 한쪽은 망가지기 마련이다. 안 그래도 밖으로는 관세협상에 안으로는 급변하는 금융제도의 가속도에 어느 줄에 서야 살지가 헷갈리는 시절이다. 특정인의 권력유지와 외형상 비춰지는 인기를 위해 내면의 자생력이 동력을 잃는다면 그 후속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안산인터넷뉴스 대표 김균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