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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7-25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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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 칼럼 군사부일체 돈사부일체

기사입력 2026-05-14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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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과 사부님과 부모님은 한 몸이란 뜻인데 과연 그럴까 대통령과 교사와 부모가 같을까. 어찌 그 깊은뜻이 이리 심하게 훼손되었을까.

지금은 달라졌다. 대통령이나 교사나 부모보다 돈이다. 돈사부일체 돈이 교사와 부모의 가치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됐다.

필자는 글을 쓰는 과정에 과거사를 피할 수 없는 것이 과거가 전제되어야 현재의 문제점과 비교할 수 있고 그래야 미래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얼핏 들으면 케케묵은 꼰대의 하소연 정도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 했다.

먼저 과거의 임금과 스승과 부모는 왜 동급으로 일컬어 졌을까. 임금님, 나랏님이라 당연히 왕이니까 그렇지만 스승과 자신을 낳고 길러준 부모가 같다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닐까.돌이켜 보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음인데
부모가 낳았다면 가르치는 것은 스승의 몫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교육 시키지 않으면 동물과 다를 바 무엇이며 과거 일제 식민지 시대나 개발도상국이었던 대한민국의 격동기에도 한결같이 부모들의 교육열은 그 어디에도 견줄 수 없는 대단함이 베여 있었다.

당신 자신은 비록 못 배워 힘들게 살았으나 내 자식만큼은 잘 가르쳐서 좋은 대학 대기업 취직시키겠다는 무식한 부모(?)님의 집념이 유식한 자식들을 배출했다.

그 과정에 자연스레 교사는 우월한 갑의 위치에 있었으며 담임선생님은 재학하는 동안 학생들에게 부모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어쩌면 부모보다 더 상급자였다.

학생이 좀 잘못하거나 성적이 떨어지면 부모님을 호출하여 상담이라는 명분으로 은근히 무언의 압력을 주어도 선생님 잘못 했습니다 를 연발해야 하는 것이 부모의 입장이다.

지금은 학생인권조례가 발달되어 과거와 다르다 오히려 교권 추락으로 교사가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리고 학생들의 잣은 신고에 적당히 수업시간만 채우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과거마냥 학생들을 훈육하고 때로는 구타나 체벌 또는 폭언을 해도 되는 시절은 지났다. 이러한 배경에는 선생님이라는 갑의 위치에서 과제물을 내놓거나 사소한 심부름까지 당연히 시키던 시절의 구태가 현재의 상황을 만든 것이다.

거두절미하고 현재의 교사가 스승의 대우를 받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몇이나 맞다고 할까. 어디 권리에서만 그럴까 AI 가 발달하고 하교 후 각 가정마다 첨단 주거문화가 학생들의 생활에 절대적으로 편익을 누리고 있는데 과연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환경이 얼마나 설득력과 공감대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스승의 가치가 추락하면 배우는 학생들의 존경심이나 교육의 효과도 같이 추락한다. 그렇다고 과거처럼 학생들을 때리거나 폭언을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교사와 학생은 구분이 있어야 한다.

과거처럼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아도 선생님이란 지식과 더불어 지혜를 가르치고 사회 진출해서 안부라도 주고 받는 정도는 되어야 한다.

졸업하면 끝이란 말은 학교에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게 아니고 공부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국가에서 정한 기초교육 과정을 마지 못해 12년 동안 다녀야 하니 사제간의 정이 삭막해지는 것이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지금이라도 선생님이라는 위치가 존중받으려면 어느 정도의 교권을 회복시키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최근 싱가포르 정부는 학교 폭력 등 비행을 저지른 학생에 대해 최대 3대의 체벌을 포함해 봉사일정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세계보건기구는 아동의 체벌결과는 평생 지속될 수 있으며 신체적 정신적 건강, 교육, 사회적 직업적 기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특히 학생들에 대한 체벌은 부모와 사회 모두에게 아무런 이점이 없다는 압도적인 과학적 증거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과거 학생들을 화풀이 대상이나 심심풀이 대상으로 아무대나 때리고 신체적 접촉이나 인권유린이 극심했던 시절은 어찌 견뎠을까.

한때 어릴적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운동이 성행했었다. 그리고 현재도 출세한 가수나 연예인들이 수십년 전 학원폭력의 가해자였다면 지금와서 문제가 된 것이 현지 진행형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일방적으로 폭력을 견뎌내야만 했던 학생들이 학원폭력을 신고해야 옳을까. 다른 일은 공소시효도 지난 일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으면서 유독 일부 폭력 교사들의 악행만 사랑의 매라는 미사어구로 덮어질까.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언제든 교사의 기분에 따라 책상 위에 무릎을 꿇게 하고 여학생에게도 플라스틱 잣대로 손등을 때리던 여교사가 있었고 남학생의 뺨은 느그 아부지 뭐하시냐며 잡아 늘려도 괜찮은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수틀리면 주먹과 발도 언제든 날릴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이 살면서 열가지 후회인 주자 십회중 춘불경종추 후회라는 말이 있고 소불근학로 라는 말이 있다.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한다는 뜻인데 지금이라도 교사의 권리가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럴려면 학생들로부터 권위가 세워져야 하고 학부모로부터 뺨을 맞아도 참아야 하는 비극이 절대 있어서는 안된다.

물론 5남매 7남매 낳아 키우던 시절이 아니라 한집에 한 명도 안 낳는 저출산 시대에 아이들이 귀하기는 하지만 귀할수록 엄히 가르치고 가정에서도 교사가 월급 받는 교육공무원을 넘어 내 자식에게 지식과 지혜를 가르치는 지엄한 분야의 교육자라는 점을 모든 국민들이 공감해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 교사들의 교육방침과 질적 향상, 훈육의 열정이 동반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필자가 고교 시절 영어 선생님의 한마디 칭찬이 인생을 바궈놓았다.

목소리가 좋다고 성우를 하라던 말씀이 7년간이나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MC를 해낼 수 있었다. 반대로 차렷 자세에서 움직였다고 뺨을 수십대 때리던 교사의 행방은 지금도 궁금하다.

선생님은 졸업하는 날 잊어도 되는 교사가 아니라 자신을 가르치는 부모와 동급이라는 점을 지금이라도 되새겨야 한다. 한 사람을 오진한 의사는 환자 한 명만 희생되지만 잘못 가르치는 교사는 많은 학생들의 인격형성과 자질향상에 악영향을 끼치는 동기가 된다.


덕암 김균식

김범식 (kyunsi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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