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사건에 대해 두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다.
한쪽은 광주라는 단어를 입만 뻥긋해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고, 한쪽은 역사는 진실에 기반해서 기록되어야 한다며 또 다른 말을 한다.
과거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말 중에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있었다. 당시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의 대명사로 민주화 운동의 광풍이 불었을 때 이 말은 온 국민적 공감대를 산 바 있다.
그러한 배경에는 전두환 군부가 나름대로 공과 과가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과로 남았다는 점과 나름 국가 발전에 이바지했던 일들조차 죄다 덮어져 지금까지 무덤하나 제대로 못 쓰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
그래서 백과사전이나 기타 기록물에는 신군부의 12.12 군사반란 및 5.17 내란 계엄군의 폭동적 시위진압으로 기록되고 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9일간 기록을 보면 광주 시민 73만명, 시위대 20-30만명, 시민군 최소 340명으로 적혀있는 반면 계엄사령부는 제 3,7,11,공수특전단과 제 20,31보병사단, 전남 경찰국이 진압에 나선 것으로 적혀있다.
이로 인해 시민 166명 사망, 73명 실종, 2,617명 부상인 반면 군인들도 23명에 경찰 4명이 사망했다. 부상자도 속출했다. 군인 115명 경찰 138명이 다친 것으로 집계됐다. 양쪽을 합치면 대략 272명이 사망, 실종된 셈이다.
그런데 같은 죽음이라도 시민들은 민주화의 영웅이 되었고 군인과 경찰에 대한 추모나 대외적인 기록은 전무하다.
2011년 등재된 유네스코 기록에는 1980년 인권기록유산 5.18 광주민주화 운동 기록물로 남아 있고 인명의 소중함으로만 본다면 같은 국민이었다.
한쪽은 군복을 입었고 한쪽은 사복을 입었다는 차이, 군복과 손에 든 총이 계엄군이라는 신분을 갖게 되었고, 시민군이라는 명분으로 영웅이 되었다.
사태가 마무리 된 후 계엄군은 국민을 무차별 학살하는 살해자로 낙인찍혔고, 많은 계엄군이 죄책감과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군인과 경찰이 국민에 대해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 그랬을까.
어디 광주 뿐인가 삼청교육대의 빨간 모자 조교들도 그랬고, 청소년들을 무차별 잡아다 개 패듯 순화 교육을 담당했던 군인들도, 역사적 아픔이 발생할 때마다 명령에 따라 총칼과 몽둥이를 휘둘러야 했던 당사자들의 가해행위가 당사자 스스로 결정하건 원해서 했다면 그 당사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악마가 바빠서 대신 보낸 저승사자나 다름없다.
1980년 군인들이 충정 훈련으로 몽둥이를 양쪽에 치켜들고 한쪽 발을 쿵쿵 굴리며 구령을 맞추는 연습은 필자가 1985년 육군에 입대해서도 마찬가지 였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일 때 연일 쉬는날도 없이 연병장에서 충정 훈련을 하다보면 힘든 만큼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멀쩡한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혀놓으면 덜 떨어진 짓거리(?)를 쉽게 한다.
그래서인가 사람은 입은 제복대로의 인간이 된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언제 부터인가 빨갱이라는 단어에 양분되는 역사적 아픔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에 가장 치명적인 단어, 빨갱이, 어릴때는 정말로 얼굴이나 몸 전체가 빨간색인줄 알았다. 붉은 혁명의 사상, 붉은 깃발이라서 빨갱이로 치부되는 단어는 이제 종식되어야 한다.
이념이나 체제는 학술적으로나 이론적으로 풀어서 구분해야 맞는 것이지 이미 광복 이전부터 세월이 얼만데 아직도 그런 원색적인 단어로 양분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을까.
광주민주화 운동은 영화나 뮤지컬, 애니매이션, 국정 교과서, 등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계엄군으로 진압에 나섰던 당사자들의 트라우마나 육체적 장애는 어디서도 조명되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북한에 시민군들의 무덤이 있다며 증거 사진들을 유포시키고, 또 다른 쪽에서는 광주민주화 운동 유공자 명단을 공개하라며 난리를 치고 있다.
이제 광주라는 두 글자는 국내 정치인들이 성지처럼 다녀가야 하는 관문으로 자리매김했다. 보수정치인은 외면하고 진보정치인은 필수 방문코스로 인식되는 과정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1980년 그로부터 46년이 지났지만 이런 갈등은 여전하다.
지난 5월 8일 국회에서 열린 제 435회 임시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은 개정안을 상정하지 않겠다며 개헌 무산에 대한 의사진행이 불가능하다며 헌법개정 절차를 중단한 바 있다.
그러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절연하지 못한 점을 부끄럽게 여기라며 정치적 공세로 개헌실패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앞서 7일 날 헌법 개정안이 표결에 부쳤으나 178명만 투표에 참여하면서 286명의 3/2인 191명의 찬성표를 채우지 못해 불성립된 바 있다.
결론적으로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발생된 희생자는 어느 쪽이든 소중한 생명이고 누구에게는 귀한 아들과 딸이며, 집으로 돌아가면 사랑하는 가족이 기다리는 존재다.
하나이 사건이 생길 때마다 그것이 해양참사든 시위대에 대한 진압이든, 형제 복지원 사건이나 대부도 선감학원 사건 등 힘없는 국민들의 희생이 더는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광주민주화 운동은 여, 야당이 정치적 견해로 양분되게 풀어 가서는 안될 사건이다.
이런 일들이 한때는 역적, 한때는 영웅으로 뒤바뀐다면 앞으로도 같은 일은 얼마든지 번복될 것이며 여차하다가 횃불을 치켜들고 죽창으로 집집마다 유혈이 낭자해지는 살벌한 풍경이 남의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언제는 그런다 하고 그랬는가. 이런 일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지금도 내란이 한창인 나라에서는 진행 중인 일이다.
시대변천에 따른 광풍은 언제든 불 수 있다.
과거를 진실에 부합되게 명백한 증거를 바탕으로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이념이나 사상의 흐름에 따라 기록되거나 조명된다면 이는 같은 오류를 번복하는 것이며 자칫 소중한 인명피해가 나도,힘없고 죄없는 국민들만 희생될 뿐이다.
그래서 역사는 어느 한쪽의 권력에 의해 쓰여져서는 안되는 것이고 사초들이 이를 제대로 적어야 한다.
그런 이유로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한 지금까지의 예산과 명부, 그리고 당사자들이나 관련자에게 제공되는 모든 혜택까지 명확히 공개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해자로 치부되었던 사람들에 대한 행위의 재조명, 보상, 관리도 병행되어야 한다.
시간이 약이 되어서는 안된다.
덕암 김균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