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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암 칼럼 고양이와 호랑이의 차이점

기사입력 2026-07-1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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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는 아무리 울어도 호랑이 포효가 나지 않으며 호랑이는 아무리 늙어도 고양이 소리가 안 난다. 마치 깜도 안 되는 인물이 감당 못할 자리에 앉아 아랫사람을 호령하면 그 앞에서야 네네 하겠지만 돌아서면 욕설부터 해댄다.

행정, 사법, 교육, 소방, 등 시험을 쳐서 임용된 공직자도 그렇지만 유권자들의 표를 받아 당선된 선출직 공직자도 마찬가지고 해당 자리에 앉을만한 인격이나 능력이 갖춰지면 다행이다. 반대로 어쩌다 공천받고 당선되어 감당 못할 자리에 앉으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특히 선거 사무실에 얼쩡대다가 당선자의 눈에 들어 정무직을 차고 앉으면 더욱 큰 문제가 생길 수 밖에 없다.

해당 조직에는 기존의 전문가들이 어렵사리 입문한 자리고 이미 업무적으로 갈고 닦은 노하우가 있기에 생판 처음 온 관리자가 천지도 모르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 해당 분야에서 구렁이가 된 담당자들한테 어떻게 받아 들여질까. 너는 짖어라 그래 봐야 4년이면 갈텐데 하며 듣는척하고 말 것이 당연하다.

어쩌다 요직에 앉은 사람이 측근의 귀뜸을 받아 그럴듯한 제안이라도 하면 마치 엄청난 정책의 기안자로 둔갑되어 다음날 공보실을 통한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아무도 안보거나 공보실 담당자와 몇몇 관계자만 보는 지역신문과 지방 일간신문에 도배되어 스크랩으로 모아지면 그걸 근거로 요직에 앉았던 한량이가 꽤나 능력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누가 감히 아니라고 말할 것인가. 이런 괴리를 펼치면 당연히 정답도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이런 폐단을 당연하듯 보은 인사로 답하는 것은 모두 상탁수 하부정이다.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도 흐린 것인데 대통령이 국회의원을 국무위원에 앉히는 것 자체가 측근을 두어야 국정을 할 수 있다는 안일하고, 무식하고, 무능함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다.

비교하자면 시청의 시장이 시정을 펼치는데 요직의 국장 자리에 시의회 같은 당 의원을 앉히는 것과 같다. 시의원이 시청이 국장이나 기타 요직을 맡으면 시정 질의에서 동료 시의원들이 무슨 질의를 할 것이며 한들 내용에 실속이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원칙은 요직에 인재를 기용해야 한다.

그래야 조직에도 말이 먹히는 것이고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조직의 활성화, 대시민 행정서비스의 질적 향상, 그리고 종래에는 조직의 기능과 역할에 활력이 붙는 것이며 조직 내에서도 절대 오너를 함부로 보는 폐단이 근절된다.

문제는 그 요직의 인재를 임용함에 있어 외부의 눈치가 있으니 공개모집이라는 형식을 빌리는데 그 자체가 요식행위다 보니 이미 기용할 사람을 정해두고 어설픈 전시행정을 펼치는 것이다.

멋도 모르고 응모한 해당분야 전문가는 멀거니 물만 먹고 실격 할테고 채용기준을 물어봐야 벽을 보고 항변하는 수준으로 마감한다. 이러니 무슨 인재가 뽑힐 것이며 그 한량이를 모시고 업무를 봐야 하는 조직의 중간 관리자나 일선 담당자는 맥이 빠지는 것이다.

거기 뿐일까 적당히 자리잡은 정무직 한량이는 해당 조직의 업무를 시민을 향한 발전이라기 보다 자신의 이득을 향한 방향으로 서서히 바꾸는 것이 관례라면 관례다.

자재 납품, 각종 시설개선이나 기타 수의계약에 사전 답안지를 줘서라도 호의를 베풀고 그 호의를 입은 업자 또한 거래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식(?)이든 인사를 해야 지속적인 거래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쯤하면 모든 정무직 인사들이 다 그런 것 같지만 간혹 아닌 인재도 있다보니 사람 사는게 어디가 정답이며 오답의 범위라는 게 따로 있는게 아니다. 오래전 일이다. 20년 전 언론사 기자들이란 이유로 온갖 대우와 특혜를 받고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 봐야 행정기관의 사소한 배려지만 취재 협조라는 명분으로 공직사회의 온갖 업무를 들여다 볼 있었던 때 였는데 나름 기자라는 직업에 자부심과 긍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할 때였다.

시청 어느 부서에 취재를 마치고 돌아설 때 두고온 물건이 있어서 다시 방문한 사무실의 분위기는 취재 이전과 전혀 달랐다. 딱 한마디 그게 기자야 기생충이지그랬다. 기생충이란 단어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생물학적인 사람이나 생물의 몸안이나 밖에 붙어살면서 영양분을 빨아먹는 동물로 적혀있다.

회충, 편충, 십이지장충도 있었지만 학술적 의미에서 특정 단체에 얹혀 살면서 하는 일도 없이 들러붙어 생명을 유지하는 개체, 그랬다 적어도 기자가 기생충은 되지 말아야지 하며 글을 쓴 것이 동기였고 그런 덕분에 기존의 일부 기자들에게 10년이란 시간을 싸워야 하는 악몽이 시작됐다.

기자로서 실력을 키우고 시민과 공직사회에 존중받는 언론인이 되자고 했다가 충분한 곤욕을 치렸다. 그래서 스스로 정한 닉네임이 늑대개였다. 큰 개들의 집요한 괴롭힘 속에 어린 늑대가 온몸에 상흔을 남기며 실력(?)을 키웠다.

그 때 한 말이 나중에 어린 늑대가 크고 지금의 큰개 가 늙어지면 그 때 어쩌려고 이러냐했다가 또 곤욕을 치렀다. 시간이 더 지나 10년이나 지난 2014년 더 늦기 전에 기자의 자질향상을 주장하며 지금대로라면 존재가치가 바닥이 될 것 이라고 충고 했고 그 조언은 정확히 재앙처럼 현실이 됐다.

기자가 국민들로 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신뢰받지 못하는 세상이 온다고 했고 이제는 그 어떤 대안도 먹히지 않는 현실에 도달했다.

덕분에 지금처럼 덕암 칼럼이라도 쓰고 있지만 과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 했을 때 영어로 질문하나 못하던 기자, 중국 시진핑을 만나러 갔다가 문재인 대통령 동행취재 기자들이 중국말 한마디 못해서 공안한테 뒤지게 얻어터지고도 쪽 팔린 줄도 몰랐던 기자도 있었다.

누구든 삶의 주인공으로 인정받으려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그 자리를 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 어설프게 자리 차지만 하고 하루 일과를 보내면 남의 눈보다 더 무서운 자신의 자존감이 자멸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혹여 고양이로 태어났다면 호랑이가 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나고 지자체의 본격적인 항해가 시작됐다. 정무직에 앉을 인물들에게 고한다. 스스로 자질이 되는지 안된다면 적임자가 오도록 비워 줄줄 아는 인재, 인물이라도 되길 바란다.

덕암 김균식 

 

 

 

 

 

김범식 (kyunsi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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