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올림픽이 끝난 직후인 1988년 10월 8일, 영등포 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던 25명중 12명이 탈출하여 서울 시내로 잠입했다. 당시 언론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사소한 사건으로 잡범에 불과했지만 자기보다 70억 원 횡령을 한 전경환이 형기가 더 짧다는 데에 불만을 가지고 탈출한 것이다.
탈출 끝에 일반 가정집에 침입해 가족들을 인질로 삼아 경찰과 대치한 사건이었다. 이들 중 주범이었던 지강헌은 사건 다음날 총 2발을 맞았고, 같은 날 세브란스병원에서 과다출혈로 숨졌다. 이 때 한 말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였다. 그리고 38년이 지난 2026년 과연 뭐가 달라졌을까.
얼마전 절도 전과 10범인 30대가 출소 4개월 만에 현금 6만 원을 훔쳐 또다시 실형을 선고받았다.
청주지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2년 3개월을 선고했는데 범죄 내역을 보면 A 씨는 청주시 청원구의 한 주차장 차량에서 현금 6만 원을 훔친 혐의를 받고 그에 앞서 2월부터는 5차례에 걸쳐 식당 등에 침입해 금품을 노렸으나 미수에 그치기도 했다.
이미 절도죄로 4차례 실형을 산 그는 지난해 10월 교도소에서 출소한 뒤 4개월 만에 다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또 다른 사건은 부산진경찰서가 발달장애를 가진 30대 남성 2명을 1,5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를 훔쳐 나누어 먹었다는 이유로 ‘특수절도’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송치한 사건인데 사건 직후 이들의 부모들은 가게 점주를 찾아가 깊이 사과했고, 무려 60배가 넘는 금액인 10만 원을 지급하며 원만하게 합의를 마쳤다.
피해자마저 처벌을 원치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경찰의 잣대는 형법 제331조, 2인 이상이 합동하여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는 특수절도에 해당한다는 그 단순한 자구 그대로를 적용한 것이다.
벌금형도 없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만 규정된 무시무시한 법 조항이, 발달장애인들의 1,500원짜리 아이스크림 하나에 가차 없이 내리꽂혔다.
수백억 원대 전세 사기범이나 권력형 비리 앞에서는 온갖 법리를 따지며 조심스러운 경찰이, 사회적 약자인 발달장애인의 엇나간 행동 앞에서는 이토록 엄격하고 신속하게 특수절도라는 무거운 죄명을 적용했다. 다행히 검찰은 이들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내렸다.
또 다른 사건은 이미 세간에 널리 알려진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4명 요금 4만6천400원 중 2천400원을 횡령한 사건인데 이미 많은 버스기사들이 800원, 3100원 등 소액을 쉽게 여겼다가 해고 당하고 어떤 운전기사는 극단적 선택을 한 적도 있었다. 최근, 함상훈 판사가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되었다.
2,400원 횡령 버스기사 사건의 2심 재판장이다. 해고를 정당하다 말한 한 재판장이 이제 헌법재판소 입성을 앞두고 있다. 또 다른 사건은 일명 초코파이 사건이다. 전북의 한 물류회사 협력업체 보안직원 A씨가 허기를 달래려 원청회사 사무실에서 450원짜리 초코파이와 600원까지 커스터드 하나를 꺼내 먹었다.
CCTV로 이를 확인한 물류회사 소장 B씨가 A씨를 경찰에 절도죄로 신고했다. B씨는 이후 경찰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으며 도난품의 회수나 변상이 아닌 A씨에 대한 처벌을 원한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A씨에게 절도죄를 적용해 사건을 전주지검에 넘겼다. 검찰은 절도액이 적은 점 등을 고려했다며 벌금 50만 원에 A씨를 약식기소했다. 그러나 A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혐의를 인정하면, 해고될 수도 있다는 걱정에서였다.
그러나 전주지법 형사6단독 김현지 판사는 A씨의 행위에 절도의 고의가 있다고 판단하고 벌금 5만 원을 선고했다. 앞서 거론한 몇 건의 재판 결과 보다 앞으로 벌어질 경찰의 사건처리와 그에 따른 법의 형평성이 더 우려된다.
이제 10월부터 사라질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 출범을 앞두고 일선 검사들의 사직이 이어지고 있다. 검사에게 보완수사권을 박탈하는 내용의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까지 예정되면서 검찰 조직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허리급 검사들을 중심으로 이탈이 가속화 하는 모습이다.
검찰이 마지막으로 남긴 오점은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포기다. 제1심 선고에서 피고인 5명 중 김만배, 남욱, 정영학은 검찰 구형보다 낮은 형량을 받았고, 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 혐의 등은 무죄가 나왔다.
그런데 피고인들은 항소한 반면 검찰이 법정기한인 11월 7일까지 항소를 하지 않음으로써, 불이익변경 금지의 원칙이 작동하게 되었다.
제2심은 제1심의 형량인 징역 4~8년을 넘는 형량을 선고할 수 없게 되었으며, 제1심에서 검사와 재판부의 판단이 엇갈렸던 이득액 산정에 있어서도 검찰이 제1심에서 주장한 추징금에 대해 향후 다툴 여지가 사라졌다,
이로써 추징액은 7800억 원에서 473억 원으로 줄었다 야당은 소리만 지르고 물러섰다. 공소 유지를 맡았던 강백신 대구고등검찰청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항소장 접수를 위해 법원에서 대기했으나 중앙지검 4차장검사로부터 대검이 불허하고 검사장도 불허해 어쩔 수 없다고 답변받았다는 글을 올렸다.
서울중앙지검 수사·공판팀 검사들이 항소 기한 만료까지 약 3시간만을 남겨둔 시점에 대검찰청으로부터 항소 불허 결정을 통보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6일 오후 11시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 질의가 끝난 뒤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사건을 항소하겠다는 대검의 의견을 처음으로 보고받았고, 정 장관은 이후 최종 항소 포기까지 수차례 반복해서 신중 검토하라는 취지의 의견을 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 신중히 검토하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전문가들이 정성호의 사실상 묵인 또는 압력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제 대한민국의 사법 신뢰도나 치안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되는지는 국민들이 피부로 느껴야 실감할 것이다.
교원과 학원이 짜고 문제와 답안을 팔고 사는 교육계, 돈으로 안 되는게 없는 세상이 천국이라면 돈 없는 사람은 지옥에 사는 것과 같다. 조선 시대나 일제 식민지 시대 보다 못한 법의 가치는 앞으로 더하면 더했지 덜할 일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우려다.
덕암 김균식